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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를 가다 본문
사흘 연속 장거리 일정이 이어졌다.
지방에서 장인의 막재(49재 행사의 마지막 의식)에 참석한 뒤
충남 부여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3월 9일에 떠나셨으니 지난 금요일은 고인이 가신 지 꼭 49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당신은 아실까. 많은 이들이 지금도 여전히 떠난 그대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하루만 차이가 벌어졌어도 모든 계획이 어긋날 뻔했다.
막재 바로 다음 날 부여에서 친구들과의 부부 동반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약속된 단체 일정이라 어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고인께서 떠나시며 딸과 사위의 사정까지 배려해 주신 모양이라며 신기해했다.
어딜 가든 카메라를 분신처럼 챙기는 나였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날은 집을 떠난 지 한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카메라를 두고 나왔음을 알았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전투에 나서는 병사가 총을 두고 나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 먼 길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아쉽지만 손전화에 의존하는 수밖에.
여기는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성흥산성 사랑나무'이다.
각종 드라마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곳인데 나무와 어우러진 풍경이 압권이다.
연인끼리, 혹은 부부끼리 인생 사진을 많이 시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올라가는 길이 자동차 교행이 여의치 않은 데다, 낮이면 방문객들이 많이 몰린다고 해서
나는 인적이 없는 이른 아침 시간을 택했다. 이 풍경을 담기 위해 얼마나 벼르고
별렀건만, 카메라를 두고 나온 것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었다.
백제문화단지. 총면적이 3,299 평방킬로미터로 규모가 엄청나다.
1994년부터 장장 20년에 걸쳐 총 6,90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백제시대의
생활문화 및 전통을 재현한 곳이다. 바로 옆에는 롯데 아웃렛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맞은편에는 민자 유치로 지어진 롯데리조트가 있다.
부소산성 내에 있는 낙화암이다.
정사는 돌보지 않고 밤낮 가무주연에만 빠진 의자왕의 무능으로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함락되자, 적군에게 능욕을 당할 바에야 스스로 죽음을 택하겠다며
삼천 궁녀가 치마를 뒤집어쓰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과거에 영화를 누렸던 국내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부여 역시 백제의
마지막 수도(사비)로서의 옛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이렇다 할 발전이 없는 도시이다.
인구 61,800명(2023년 말 현재)에 하루 일정으로도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오늘날 외부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명소 중 하나가 궁남지이다.
매년 7월 중순이면 이곳에서 연꽃축제가 열리는데
전국에서 방문객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궁남지 영향 때문인지 부여 시내에는 연잎밥을 파는 가게가 많다.
우리가 간 곳은 '사비향'이라고 하는 음식점이었는데,
숙소 주인의 친구가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연잎밥 정식' 단품 메뉴에 1인분 18,000원으로 만족도가 긍정적인 편이었다.
백제는 700여 년의 역사에 비해 오늘날 남아 있는 문화유산이 많지 않다.
그나마 백제 건축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는
정림사지 오층 석탑(국보 제9호)이 남아 있어 위안이 되고 있다.
이름 그대로 절터만 남아 있다.
마침 우리가 묵은 숙소 바로 옆이어서 저녁 식사 후 산책 겸해 들렀다.
무료 개방이며 주야간 모두 관람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부여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모두 처음이라고 했다.
그렇듯이 부여는 다른 도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외부에 덜 알려져 있는 듯하다.
다들 교과서를 통해서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실제로 방문해 본 이들은 생각처럼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느 도시와 달리 아파트를 비롯한 고층 건물이 없어 시각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일행의 한결같은 평가가 '도시가 참 깨끗하다'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함께한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만나 지금껏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본래 9명으로 시작했지만, 학교 졸업 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두 명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현재는 7명만이 남아 있다. 사는 곳이 전국 각지라 일 년에 모일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친구들도, 배우자들도 모두 우애가 좋다.
대체로 친구들끼리 괜찮더라도, 배우자들끼리 잘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는 오히려 부인들끼리 더 잘 맞아 만날 때마다 분위기가 좋다.
안타까운 건 건강 문제로 빈자리가 하나 둘 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의 앞일이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긴 하지만,
다들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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