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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그곳에 가면 - 나의 살던 고향은

자유인。 2024. 6. 25. 01:51

 

선친 기일을 맞아 고향 산소에 다녀왔다. 금년으로 돌아가신 지 8주기를 맞이한다. 아버지 없는 유복자로 태어나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온갖 고생 끝에 집안을 일구셨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할 만큼 인색하셨지만, 자식들을 위해서는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당신이 잠든 곳은 문중에서 합동으로 마련한 납골묘 형태로 되어 있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 또한 여기로 가야 한다.

 

 

 

부모님 산소가 있는 마을은 우리 문중 집성촌이다.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영화나 드라마에도 등장했다. 명절이면 아버지를 따라 집안 어른들께 인사드린다고 여기까지 2시간 거리를 걸어서 오가곤 했다. 버스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성장기에는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당신 산소 근처나 가야 볼 수 있는 살구나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내가 태어나서 성장기를 함께한마을이다. 여기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후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생가가 남아 있긴 하지만 더 이상 나를 맞아주는 이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이따금씩 고향에 내려가면 특별한 일이 없어도 습관처럼 들르곤 한다. 고향이 고향일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이 계시기에 가능한 일임을 당신들이 떠나시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고향에 내려갈 때면 색다른 먹거리가 없을까 열심히 찾아보곤 한다. 오징어와 돼지불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석쇠에 구운 거라 불향과 더불어 밥과 궁합이 잘 맞는 데다 맛 또한 엄지 척이다. 예천군 용궁면에 본점을 둔 음식점으로 내 고향뿐만 아니라 수도권까지 진출했다.

 

 

부모님을 뵈러 간 자리지만, 당신들만 뵙고 올라오기엔 멀리까지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 그 시간을 여행의 일환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 제법 되었다. 내려간 김에 고향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예로부터 누에고치로 짠 명주로 유명한 고장이어서 박물관까지 생겨났다. 어릴 때 집에서도 누에를 기른 터라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엔 이런 곳이 아니면 보기가 어려워졌다.

 

 

시골이라고 해서 노인 냄새 가득한 다방만 있는 건 아니다. 이렇게 멋진 카페도 있다. 웬만한 도시 부럽지 않다. 인적 없는 시내만 돌아다니다 이런 데를 가면 '무얼 보고 시골이 살기 어렵다고들 할까'라며 의문을 가지기 십상이다. 고향을 다녀오고 나면 뿌듯함보다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겁다. 며칠씩 후유증이 이어지기도 한다. 당신들과 함께했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기도 하고, 그립지만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