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그곳에 가면 - 충청남도 예산을 가다 본문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동네에서는 걷기 아니면 자전거가 주요 이동 수단이다. 평소 운동을 위한 운동보다는 생활 전반을 운동화化하게 되면 따로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나대로의 생각을 실천에 옮겨보자는 것이 하나요, 차를 타면 순간적으로 못 보고 지나칠 세상의 풍경들을 천천히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관찰 활동은 동네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자주 접하면 식상할뿐더러 더 이상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기 어렵다. 이따금씩 하게 되는 기차 여행도 그중 하나다. 대개 집에서 멀지 않은 한두 시간 거리의 여행지를 택하곤 한다. 차편은 가장 느린 무궁화호. 급한 사무가 있는 이들은 더 빠른 고속 열차를 이용해야겠지만, 여행은 분초를 다투기보다는 느림의 미학을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충남 예산에 다녀왔다. 재충전이 필요할 때면 종종 찾는 곳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인 데다, 현지 기차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다만 대도시처럼 교통편이 많지가 않아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주된 목적지는 예당호. 편도 한 번은 버스를, 다른 한 번은 시골길 걷기이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예당호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차편이 마땅치 않아 시내까지 걸어서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참 좋았다. 마치 내가 나고 자란 고향 풍경을 보는 듯했다.
예당호는 예산과 당진에 걸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웬만한 바다를 연상케 할 만큼 넓다. 외지인들이 예산을 찾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예당호와 예당호에 설치된(2019) 출렁다리를 보기 위함이 하나요,
최근 외식 사업가 백종원 씨가 예산 상설시장을 개조하여 만든 음식 타운을 방문하기 위한 목적이 또 다른 하나다. 후자의 경우 적막강산이던 시골 동네를 하루아침에 전국적인 명소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수많은 다른 지자체의 사례 연구 대상인 된 곳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예산은 사과로 유명했다. 실제로 예당호에서 시내로 걸어오는 동안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밭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것처럼 특정 지역에만 국한된 특산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품종을 막론하고 전국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당호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 중 하나가 어죽이다. 어죽은 도심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고, 주로 강이나 저수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이다. 다 같은 어죽인 것 같지만 집집마다 미세한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나는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면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가급적 피하고 현지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찾는 편인데, 안타깝게도 갈수록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이제는 대부분의 음식이 지역 구분 없이 전국 어디를 가든 만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미당 시인이 그랬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나 또한 돌아보면 마흔 무렵 우연히 사진을 알게 되면서 불붙기 시작한 여행을 통해 삶의 질과 색깔은 확연히 달라졌다.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요,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는 말이 있듯이 같은 돈을 쓰면서도 여행만큼 생산적인 소비 대상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런 과정이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축적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쩍 더 성장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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