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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렇게 말은 하지만

자유인。 2024. 10. 19. 03:46

 

 

살면서 우리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리는 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 건강이란 단어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거나 헤어질 때마다 습관처럼

건강하라며 덕담을 건넨다. 건강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튼튼할 건健, 편안할 강康자를

써서 '몸이나 정신에 아무 탈이 없이 튼튼함'이라고 풀이가 되어 있다.

 

이 세상에 자신과 가족이 아프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정신에 문제가 있지 않는 한

새해 소원을 빌 때 '제발 올해는 나와 우리 가족이 중병에 걸려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아프지 않기를 우선적으로 바란다.

그토록 바라건만 아픈 사람은 지속적으로 생겨난다. 기도가 부족해서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건 우리의 희망일 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건강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면서 나는 건강 문제로 두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굳이 '위기'라는 단어를 선택한 건 상황이 자못 심각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어쩌다 뒷머리를 심하게 부딪혀 뇌진탕 사고를 당했다.

그날 이후 무엇 하나 음식물을 제대로 삼킬 수가 없었다. 극심한 어지럼증으로 먹는 것마다

죄다 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토하다 토하다 급기야 연두색에 가까운 위산까지 토해낼 정도였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병원도 가지 못하고 검증도 되지 않은 민간요법에만 의존하다

사고 후 보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병원을 찾았다. 그때 의사가 했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운이 나빴으면 바보가 되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라고. 이후, 정상을 회복하기까지 일 년이 넘게 걸렸다.

 

또 한 번은 대학교 2학년 봄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체한 듯 명치 아래쪽이 뜨끔거렸다.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었지만 낫기는커녕 상태는 도리어 더 심해졌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다니던 학교 병원을 찾았지만, 담당 의사는 대수롭지 않으니

처방해 주는 약을 먹고 나면 금방 나을 거라며 안심을 시켰다. 문제는 병원을 다녀온 바로

그날 저녁부터 발생했다. 약을 먹고 얼마쯤 지나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한밤중에 대학병원에 실려가 세 시간이 넘는 긴급수술을 받아야 했다.

병명은 복막염(충수돌기가 터져 복강 및 복강 내 장기를 덮고 있는 복막에 염증이 생기는 증상.

맹장염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을 치료 시기를 놓쳐 다음 단계로 악화된 상태)이었다.

다음날 아침 회진을 돌던 의사가 말했다. '상태가 매우 심각했었다'라고.

'고름이 횡격막까지 차올라 조금만 늦었더라면 자칫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었다'라고.

이때는 예후까지 좋질 않아 그로부터 2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은 점차 회복되었지만,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내가 겪은 아픔과 후유증은 오로지 나만이 알 뿐, 가족도, 형제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러 그때의 심각했던 상황을 얘기해 보지만, 625를 겪어 보지

않은 이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아무리 설파해 봤자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다시 말해 내 몸이 아프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걸 대신해 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건강이란 상당 부분 운명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름대로 관리하고

조심을 한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한 예방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지레 앞당겨 걱정하기보다 그저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고, 내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건강 비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