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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노년의 행복

자유인。 2024. 10. 28. 03:40

 

 

내가 어릴 때는 집에서 따로 구독하던 신문이 없었다. 그 시절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직장에서 보시던 신문을 하나씩 갖고 오셨는데, 나는 날마다 그것이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아버지께 잘 다녀오셨냐고 인사를 하고 나면 타고 오신 자전거 짐받이부터 가장 먼저 살피곤 했었다. 늘 거기에 신문을 묶어서 오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신문을 열심히 읽는 내가 기특하다며 칭찬을 하시곤 했었다.

 

몇십 년을 보던 종이 신문을 끊은 지 2년이 넘었다. 무언가 배울 수 있거나 도움이 되어야 할 신문이 온통 정치인들의 물고 뜯는 기사로만 도배가 되고 있어 도움은커녕 도리어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나와는 하등 상관도 없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좇아가며 꿰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내가 신문에서 가장 좋아하는 면은 문화 면이다.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와 관련한 기사들이 제법 실렸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런 추세에 변화가 일면서 최근 들어서는 통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래도 신문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씩 문화 기사만을 따로 모아 꾸미기도 한다. 그것을 보기 위해 이따금씩 주말판 신문을 사서 읽어보곤 한다.

 

이번 주말판에는 한 여성 시니어 모델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1943년생이니까 올해로 81세. 흔히 시니어 모델이라고 하면 나이 들어 먹고살 만한 이들이나 도전하는 거라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녀가 걸어온 길은 정반대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찍부터 방직 공장 봉제사, 간호보조원으로 일했으며, 일흔이 넘어서까지 간병인 생활도 했다고 한다. 없는 형편에 적지 않은 빚까지 져서 지금도 상황이 썩 여의치는 못하지만, 그녀의 표정과 외모에서는 그런 역경의 흔적을 읽을 수가 없다.

 

생각지도 못했던 시니어 모델에 도전하게 된 건 자신이 간병하던 한 여성 환자의 권유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나이 71세였다. 그녀는 말한다. 은퇴하면 직업의 종류에 얽매이지 말고 직장을 가져야 한다고. 매일 사람 만나 어울리고, 적은 액수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진정한 노년의 행복이란 내 일, 내 삶을 갖는 거라고. 앞으로의 꿈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말했다. 뉴욕, 파리의 런웨이에 외국 모델들과 함께 서 보는 거라고.

 

사람이 나이가 들면 본인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규정할 때가 많다. '이 나이에',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몰입할 수 있는 나만의 무언가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심하다거나 무료함을 느끼는 이들의 공통점은 특별히 좋아하거나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건 어느 누구도 대신 만들어주지 못하고, 본인 스스로 찾아야 한다. 시간과 돈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할 것 같지만, 막상 닥치고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인생에서 사전 준비와 연습 없이 이룰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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