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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나는 비교적 잠을 잘 잤다.한때는 머리만 붙이면 잠이 들었다. 걱정거리가 있어도 일단 자고 나서 하자는 편이었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근 들어 부쩍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잠이 드는 데 한두 시간은 보통이요, 어렵게 자더라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곧 깬다.깨고 나면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누워도 멀뚱멀뚱 시간만 지나간다.특별히 고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점심을 먹고 나면 커피를 한두 잔씩 마시곤 하는데 혹시 그것이 원인일 수 있지 않을까.이전에는 커피로 인해 특별히 지장을 받은 적은 없었다.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은 모르는지라 시험 삼아 며칠 커피를 멀리해 보았다.신기하게도 ..

학창 시절 나는 단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다.어쩌다 언저리까지는 가 봤지만, 맨 앞자리는 늘 다른 학생의 차지였다.거기에는 내 능력의 한계일 수도,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그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굳이 공부가 아니어도 다른 어떤 분야에서든 1등을 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다.무대가 크면 클수록 그에 따른 명예와 가치는 더 커진다.반에서 1등 하는 것보다는 전교에서, 전교보다는 지역에서, 지역보다는 전국에서, 전국보다는 세계에서 정상을 차지한다면 그 기분은 어디에 비할 바 아니다. 운동 또한 학교에서 1등 하는 것보다는 지역에서, 지역보다는 전국에서, 전국보다는 아시안 게임에서, 아시안 게임보다는 올림픽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 기쁨..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면 어떤 얘기들을 나눌까, 어른들의 생각과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우리보다는 훨씬 수준이 높고 차원도 다르겠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세월은 흘렀고 나도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여기서 어른은 인품이 훌륭하다는 게 아닌, 단순히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다). 그런 나는 어릴 때 상상했던 어른다운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어른으로서 그만큼 더 너그러워졌을까?그렇다고 선뜻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고 보니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 마음의 그릇까지 넓혀주는 건 아니란걸.나이가 들어도 속이 좁은 사람은 여전히 좁다는걸.그건 전적으로 수양을 위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느냐에 달려 있다는걸. 수양이 부족..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나가 얼마간 다른 곳에서 산 적이 있었다. 거기는 주방 수도가 발로 밸브를 밟아야만 물이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몇 년을 그렇게 살다가 현재 사는 곳으로 복귀했는데, 여기는 수도 밸브만 틀면 물이 나오게 되어 있어 별도로 발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예전 습관이 남아 있어 한동안 수도를 틀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발을 밟곤 했던 기억이 난다.요즘 우리가 사용 중인 문명의 이기 대부분은 소형화 내지 간결화의 길을 걷고 있다. 웬만한 가구와도 같았던 텔레비전은 얇은 모니터 하나로 축소되었고, 군용 무전기와 다름없었던 휴대전화기는 손안으로 들어올 만큼 작아졌다. 본체와 모니터가 분리되어 차지하는 공간이 더없이 넓었던 컴퓨터 역시 일체형으로 바뀌었다. 예외가 있다면 자동차만 갈수록 ..

모든 인간관계의 갈등은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한다.가깝다 보면 함부로 해도 괜찮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자신의 생각이 곧 상대방의 생각인 양 말하는 데 걸림이 없다.우리 사이에 그런 말도 못 하나며 .. 그것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본인은 알지 못한다.살면서 멀어진 이들의 공통점 역시 모두 가까운 이들이었다. 한 번 틀어진 관계는 회복이 쉽지 않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존경과 존중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존경은 높이 받든다는 것이고, 존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내 생각과 같지 않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다.다를 뿐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인연도 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너무 가깝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