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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나는 시골 농촌 출신이다.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것이 중학교 1학년 가을쯤이었으니까 환경을 대략 짐작할 수 있으리라.그 당시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까지 가려면 편도 한 시간 이상을 꼬박 걸어야 했다.작고 약한 몸으로 무거운 책가방과 도시락을 메고 학교를 오가는 길이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걷는 것 외에는 달리 대체 방안이 없었다. 가장 부러웠던 것이 읍내에 사는 아이들이었다.학교가 파하면 돌아갈 집이 지척이었던 그들을 보며 '우리 집도 읍내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사는 집 바로 앞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가 엎어지면 코가 닿을 듯 가깝다.내 아이들도 모두 거기에서 배우며 자랐다.오며 가며 운동장에서 수업하거나 뛰노는 학생들을 보면서나의 시절과는 비..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장식이나 디자인을 빼놓고는 그 무엇도 이야기할 수 없다. 이는 분야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적용되는 이야기다.사람의 경우 아무리 든 지식이 많아도 옷차림이 반듯하지 않으면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우리가 옷을 입는 이유는 부끄러운 곳을 가리기 위함도 있지만,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식의 목적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여성들이 화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물건이나 기계의 경우 아무리 성능이 우수해도 외관이 아름답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기업들이 해마다 디자인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초창기의 제품들은 오직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면 그만이었지만, 오늘날엔 그에 못지않게 디자인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경쟁에서 살아남는다.우리가 매일 먹..

내가 난생처음 서울 구경을 한 건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였다.조선호텔에서 열린 이종 형님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아버지를 따라갔던 길이었다.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서울 가는 기차가 없어 김천역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거기에서 다시 서울행 기차를 타야만 했다. 당시에는 '특급열차'로 불리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통일호 열차가 바로 그것이었다. 외국 가는 비행기를 처음 탈 때가 그런 기분이었을까. 가기 전에도, 기차를 타고 나서도, 서울에 도착해서도 내내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 서울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이들은 '출세'의 상징이자더없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서울 나들이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교통 신호등을 본 것도, 양변기를 구경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고, 시내버스란 ..

살면서 이따금씩 증명사진이 필요할 때가 있다.가장 수요가 많은 때는 아무래도 취업을 앞둔 학생이나 젊은이들일 것이다. 이력서만 낸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니 꽤 많은 사진이 필요하다.내가 취업할 당시엔 아날로그 시대라 필요한 만큼의 사진이 있어야 했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그 많던 사진관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기 마련인데,굳이 사진관이 아니어도 대체 방안이 다양해졌으니 그럴 수밖에.직장을 졸업하고 나니 특별히 나를 증명해야 할 일이 없어졌다.있다고 해 봐야 여권을 만들 때 정도? 최근 운전면허증 갱신을 하려고 보니 사진이 필요하다고 했다.요즘 웬만한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으려면 2만 원이 훌쩍 넘어 아깝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하다. 여러 장 있어 봐야 딱히 활용..

우리나라에서 습지로는 전라남도 순천만 습지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수도권에도 그에못지않은 넓은 습지가 있다. 바로 과거 소래염전으로 활용되었던 시흥 갯골이라고 하는 곳이다.갯골이라 하면 '갯벌을 따라 물줄기가 흘러 내려가는 물길'을 이르는 말인데, 여기는 특이하게서해안 바닷물이 내륙으로 이어진 갯골을 따라 드나들면서 밀물과 썰물이 교차한다.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아직까지 모르는 이들도 많은데 나들이 삼아 가볼 만하다.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폐염전 자리를 시흥시에서 공원으로 잘 조성해 놓았기 때문이다.이름하여 시흥갯골생태공원이다. 주차 시설을 비롯하여, 잔디광장, 화장실, 휴식처, 물놀이 시설, 산책로 등을 두루 잘 갖추고 있다. 과거에 활용하던 염전은 없어졌지만,이렇게 현대적인 모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