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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내 고향 상주는 꽤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신라시대는 9주의 하나였고, 고려시대에는 8목의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200년 간 경상감영(오늘날의 도청)이 있던 곳이기도 했다.경상도란 이름 역시 경주와 상주에서 따온 것이었다.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쌀과 누에고치, 곶감을 일컫는 삼백(三白)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그 중에서 곶감은 전국 생산량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자전거의 도시', 더 나아가 '자전거의 수도'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상주 출신으로 자전거를 타지 못 타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상주 시민들에게 자전거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 요즘처럼 별도의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닌, 어릴 때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익히게 된다.그런 배경에 따라 전국 최초이자 유일한 ..
아버지 기일을 맞아 고향에 다녀왔다.못 뵌 그 동안 일어났던 집안일들을 소상히 말씀드렸다. 부모님 산소는 납골묘 형태로 되어 있다. 아버지 사촌 형제의 자손들까지만 허용이 되며, 문중 기금을 토대로 종손 형님이 맡아 관리하신다.책임감이 남다른 형님이 떠나시고 나면 누가 후임을 맡을지 걱정이다. 산소 앞에는 산딸기가 지천이다.인적이 없는 시골에는 이런 훌륭한 자연의 먹거리가 있어도 따 가는 사람이 없다.어쩌다 나 같은 자손이 때맞춰 오면 옛 추억을 생각하며 한두 개씩 맛을 볼 뿐이다. 산소가 있는 마을은 우리 집안의 집성촌이자 예로부터 유서가 깊은 곳이다.웬만한 민속촌 못지않은 고택들이 잘 보존이 되어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나 어릴 적 시골 마을에는 이런 살구나무가 곳곳에 있어..
몰랐던 서울을 뒤늦게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후배들과의 만남이 있던 날, 서촌 일대를 둘러보았다.서촌이라 함은 경복궁 서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청운동, 효자동, 사직동 일대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서울에서는 드물게 북촌과 더불어 예스러운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청와대로 인한 고도 제한 때문인지 여느 지역과는 달리 야트막한 단층 건물과 옛 한옥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아날로그 정서가 물씬 풍기는 동네였다. 얼마 전 다녀온 성북동 일대와 비슷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길었던 코로나 터널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듯 거리에는 외국인도 많았고, 한복을 빌려 입고 기념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도 부쩍 눈에 띄었다.고층 빌딩 일색의 현대적인 서울 풍경만 접하다가 이 동네에 오면 마..
나는 결혼 이후 내가 사는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그 중에서 신혼생활 10년 가까이는 군포라는 도시에서 살았다.그 당시 군포는 지금처럼 독립된 지자체가 아닌, 경기도 시흥군 소속의 읍 단위 소도시였다.그곳에서 내 아이들이 모두 태어났고, 산본 신도시의 건설 과정도 처음부터 쭉 지켜보았다아들이 태어났던 병원은 몇 차례나 상호를 바꿔 영업을 이어가고 있고,딸이 태어난 병원은 오래 전 사라지고, 그 자리엔 번듯한 현대식 고층 건물이 들어섰다.요즘처럼 정수기가 없던 때여서 이른 아침이면 배낭에 플라스틱 물통을 지고바로 뒤 수리산 약수터까지 바쁜 걸음으로 달려가 약수를 한 통씩 길어다 놓고 출근하기도 했었다.지금은 바로 옆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 가정의 역사가 처음 시작된 곳이어서 나로서는 어..
경기도 시흥이란 곳에 몇 년을 머문 적이 있다.가기 전까지만 해도 도시 이름도 낯선 데다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던 미지의 세계였다.집들이한답시고 놀러왔던 친구들이 베란다를 내다보며 하는 말 - '경치는 참 좋다!'.'경치도 좋다'가 아닌 '경치는 좋다'였다. 내 딴은 성장기 아이들에게 시골의 기억을 심어 주고 싶은 심산이었지만도시 생활에만 익숙했던 가족의 생각은 달랐다. '왜 이런 데 이사를 왔느냐'는 민원에 시달리다 못해,결국 아이들의 상급 학교 진학을 앞두고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그 덕분에 나로서는 소중한 인생의 놀이터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직접 살아보지 않았으면 그곳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가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집에서 멀지 않은 데다, 내가 나고 자란 시골 농촌의 환경을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