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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선친 기일을 맞아 고향 산소에 다녀왔다. 금년으로 돌아가신 지 8주기를 맞이한다. 아버지 없는 유복자로 태어나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온갖 고생 끝에 집안을 일구셨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할 만큼 인색하셨지만, 자식들을 위해서는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당신이 잠든 곳은 문중에서 합동으로 마련한 납골묘 형태로 되어 있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 또한 여기로 가야 한다. 부모님 산소가 있는 마을은 우리 문중 집성촌이다.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영화나 드라마에도 등장했다. 명절이면 아버지를 따라 집안 어른들께 인사드린다고 여기까지 2시간 거리를 걸어서 오가곤 했다. 버스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성장기에는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방송에서 웬 남자 둘이서 산을 오르다 약수를 떠먹는 장면이 나왔다.국자는 하나였고, 당연한 듯 같은 국자로 돌아가며 마신다.'시원한 약수 한잔 마시니 저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라며 뿌듯해한다 어느 약수터를 가든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다.국자가 한두 개 또는 여러 개 걸려 있고, 너도나도 그것들을 이용해 물을 마신다.누군지도 모르는 수많은 이들이 같은 국자에 입을 대고 마셨지만,그에 관해 의문을 품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남이 쓰던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내 입에 넣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라는 생각 때문이다.그렇다고 음식점의 그것들처럼 일일이 세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신기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누구보다 위생을 앞세우는 이들도 약수터 국자 앞에서는 더없이 관대하다는 사실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

내가 지인과 명동을 약속 장소로 정한 데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대학 초년생 시절 어떤 여학생(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과 명동에서 미팅을 한 적이 있었다. 중국대사관 근처 '가무'라는 카페였다. 거기에서 비엔나커피를 마셨던 기억까지. 비엔나커피(Vienna Coffee)란 오스트리아에서 유래한 커피로 오늘날의 아인슈페너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데, 아메리카노에 달콤한 휘핑크림(whipping cream=생크림을 세게 저어 잘게 거품을 낸 크림)을 올린 커피를 말한다. 어느 날 문득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시절이 생각나 비엔나커피를 찾으니 다들 '그런 커피가 다 있느냐'라며 반문하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놀랍게도 '가무'라는 카페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이어..

지인과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나더러 장소를 정하라기에 명동교자에서 만나자고 했다.이름만 알고 있을 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평소 궁금했던 곳이었다.명동교자는 1966년 명동칼국수란 이름으로 출발한 뒤, 중간에 한차례 상호를 바꿔 지금까지 서울의 최중심인 명동 한가운데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맛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집이다. 대표적인 메뉴는 칼국수 - 이외에도 콩국수, 만두 등이 있기는 하다. 무엇보다 맛있다 - 내가 할 수 있는 최상급의 표현이다. 조금도 돈(11,000원)이 아깝지 않다.차별화된 국물 맛에 면발이 얇아 밀가루 씹는 느낌이 없이 부드럽다. 양이 부족하면 사리를 무료로 추가해 주기도 한다. 칼국수엔 김치가 중요한데 그 역시 훌륭하다. ..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6월 한 달간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주최하는 '여행 가는 달' 제2탄으로 전북 남원에 다녀왔다. 이번 역시 서울에서 여수엑스포역까지 운행하는 남도해양열차(전라선)를 이용했다. 지난번 전주에 이어 남원을 여행지로 택한 건 현지 기차역에 내려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편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었다. 다른 지역도 가보고는 싶었지만, 당일 일정으로 소화하기에는 너무 먼 데다 현지에서의 대중교통편이 마땅찮은 것이 문제였다. 기차로 남원을 찾은 건 난생처음이었다. 일반 열차와 달리 정차역이 많지 않아 내가 사는 곳에서 남원역까지는 세 기간 남짓 소요되었다. 역사(驛舍)가 최근에 지은 것 같아 물어보니 본래 시내 다른 곳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문화재가 발굴되어 구역은 폐쇄하고 이곳에 ..